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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ne744 2020년 June 25일

서아프리카 베냉 공화국 인근 해상에서 한국인 선원 5명이 피랍됐습니다. 외교부는 현지 시각으로 어제(24일) 오후 3시 40분, 한국시각으로 오늘 새벽 0시 40분쯤 서아프리카 베냉 공화국 남쪽 111km 해상에서 우리 국민 5명이 피랍됐다고 밝혔습니다.

납치된 선원들은 990톤급 가나 국적 선박 ‘파노피 프런티어’ 호에서 참치잡이 조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 참치잡이 조업 중에 우리 국민 5명 피랍

선박에는 모두 30명의 선원이 승선 중이었는데, 이 가운데 우리 국민 5명과 가나 국민 한 명만 피랍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나머지 가나 국적 선원 24명은 파노피 프런티어 호를 타고 가나로 귀항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외교부는 현재 납치 세력의 신원과 소재 등은 파악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현지 언론은 총을 든 괴한 여러 명이 고속정을 타고 파노피 프런티어호를 공격했으며, 한국인 5명 등 6명을 납치한 뒤 나이지리아 해역인 동쪽으로 도주했다고 전했습니다.

외교부는 즉각 현지 공관에 비상대책반을 구성하고, 관계 기관 등과 긴밀히 공조해 선원들의 조속한 석방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습니다.

■ 부산 송출 회사 “금품 노린 납치로 추정…연락 아직 없어”

선원 송출회사인 피오마린 측은 오늘(25일) 오전 6시 반쯤 현지 법인으로부터 선원들의 피랍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밝혔습니다.

피랍된 한국인은 50~60대로 선장과 기관장, 일등 항해사, 일등 기사, 갑판장 등 모두 간부급 선원들로 파악됐습니다.

선원들의 주소는 부산 3명, 광주 한 명, 인천 한 명으로, 회사에서 선원 가족들에게 피랍 사실을 통보했습니다.

회사 관계자는 “금품 등을 노리고 한국인 선원들을 납치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괴한들로부터 요구사항 등과 관련해 연락이 오지 않아 정부 차원의 대응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 해적 자주 출몰하는 ‘베냉 앞바다’는 어떤 곳?

베냉 앞바다는 서아프리카 해역 기니만(灣)에 인접해 있습니다. 가나와 토고, 베냉과 나이지리아 등이 근접한 국가입니다.

기니만은 유럽과 대서양으로 향하는 항로가 지나 국제 선박의 주요 통행입니다.

서아프리카 해역 기니만은 지난해 있었던 전 세계 해적 피랍 사건의 42.1%가 발생한 곳입니다. 작년에 162건의 피랍 사건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61건이 발생했습니다. 작년 전 세계적으로 선원 210명이 납치됐는데, 기니만을 포함한 서아프리카 해역에서 발생한 사례만 해도 절반을 훌쩍 넘긴 121명이었습니다.

가나 인근 지역에는 최근 계속 이런 피랍 사례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국민은 지난 2018년 3월 26일 마린711호에 탄 한국인 3명이 피랍된 바 있습니다. 이들은 32일 만에 석방됐습니다.

올해 5월 3일에도 가봉 해역에서 조업 중이던 우리 국민 한 명과 인도네시아 선원 2명, 세네갈 3명이 피랍됐습니다. 우리 국민인 50대 남성 A씨는 37일 만인 6월 9일 석방 됐고, 지난 10일 귀국했습니다.

현지 언론 보도에 따르면, 인근 기니만 해역에서 올해에만 7차례 피랍이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3차례 피랍 사건이 발생했다고 하는데, 올해 작년보다 더 많이 발생하는 걸 알 수 있습니다.

■ 기니만에 해적 납치 증가한 이유는?

일단 이곳이 중요한 참치어장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 지역은 나이지리아 원유와 가스의 이동 통로이기 때문에 과거부터 해적의 표적이 되어 왔습니다. 과거에는 원유 운반선이나 화물선, 예인선 등이 많이 공격당했는데, 최근에는 코로나19로 인한 저유가 여파로 대형 선박들 운항이 줄어든 대신 어선과 참치 조업 선박에 공격이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두 번째는 소말리아 해적 작전 때문입니다. 아프리카 동부 해역에서 2017년부터 소말리아 해적 퇴치 작업이 진행 중인데, 우리 청해부대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 영향으로 동부 해역에서는 해적 공격이 줄어들었는데, 대신 해적들이 서쪽으로 이동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세 번째 이유는 연안국들인 가나와 나이지리아, 베냉, 토고, 적도기니 등의 정세가 불안한 것도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빈곤해지는 주민들이 해적에 가담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상황은 이렇지만, 아직 서쪽 해역에 대해선 해적 정보 수집 등이 쉽지 않은 상황으로 알려졌습니다.

1997년 7월1일, 홍콩에서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중국의 오성홍기가 올라갔다. 99년이라는 긴 외출을 끝낸 홍콩은 중국 품으로 돌아왔다. 중국은 영국과 홍콩에 약속했다. 1997년 이후 50년 동안, 즉 2046년까지 일국양제 체제를 유지하고 홍콩이 그동안 누린 모든 것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자치권을 보장한 것. 하지만 그것 역시 유통 기한이 있는 것이었다. 홍콩 격동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홍콩 국가 보안법’이 갖는 의미

지난 5월28일 중국의 베이징 인민대회당. 이날 소집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3기 3차 전체 회의에서 법안이 하나 통과되었다. 그 법안의 정식 이름은 ‘홍콩특별행정구의 국가 안보를 수호하는 법률 제도와 집행 기제 수립 및 완비에 관한 전국인민대표대회의 홍콩 국가 보안법 도입 결정National People’s Congress Decision on Hong Kong national security legislation’. 우리는 이를 ‘홍콩 국가 보안법’이라 부른다. 이 법안은 중국 인민 대표단 2885명이 참여해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찬성표가 이렇게 많은지, 혹은 누가 반대표를 던졌는지가 궁금하거나 흥미거리가 아니다. 이 법안이 갖는 무게감은 단순하게 ‘한 개 법안’의 통과가 아니다. 구체적 실행 내용은 중국 상무위원회에서 세부적으로 결정되겠지만 이 법안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금지’, ‘국가 분열 및 테러리즘 활동 처벌’, ‘국가 안보 교육 강화’라는 3원칙을 골자로 하고 있다. 법안의 통과로 이제 중국 정부는 중국의 각종 보안 기구, 일테면 국가안전부를 비롯한 국가 안보, 정보 기관을 홍콩에 설치할 합법적 근거를 마련했고, 또 홍콩에서 일어나는 시위 참가자를 검거하고 처벌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홍콩 국가 보안법’ 통과로 인한 후유증은 지금 중국, 홍콩의 문제가 아닌 미국, 영국을 비롯한 전 세계로 그 불씨가 번지고 있다. 미국 정부는 당장 ‘미국 내 중국 유학생 약 3000명의 추방 조치’를 예고했고, 또한 1992년부터 적용된 ‘홍콩 특별 지위’를 철폐할 수도 있다고 말해다. 홍콩의 오랜 통치국이던 영국은 홍콩 주민 약 30만 명에게 영국 시민권 취득을 용이하게 하겠다는 조치를 발표했고, 대만 역시 홍콩인의 대만 이주를 돕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물론 이 법안에 가장 강력하게 반발한 이들은 당연히 홍콩 시민이다. 그들은 이미 작년 중국 정부가 시도한 ‘범죄인 송환법’을 지속적인 투쟁과 시위로 막아 낸 경험을 바탕으로 ‘홍콩 국가 보안법’의 제정과 적용에 반대하고 있다.

홍콩 국가 보안법 제정은 2020년이 최초가 아니다. 2009년 마카오에 이 법을 적용시킨 중국은 홍콩에도 이 법을 도입하기 위해 이미 2003년에 제정을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사스의 대유행에도 불구하고 50만여 명의 홍콩인들이 반대 시위에 참여해 법 제정을 막았다. 물론 1997년 이후 중국의 일국양제 원칙 내에서 고도의 자치권이 보장된 홍콩에도 홍콩 내 국가 분열과 반란에 대한 금지 규정은 있었다. 홍콩의 헌법 격인 ‘홍콩기본법’ 제23조에는 ‘홍콩특별행정구는 자체적으로 법을 제정하여 국가에 반역하고 국가를 분열시키며 반란을 선동하고 중앙인민정부를 전복하며 국가 기밀을 탈취하는 행위를 금지해야 하며, 해외 정치 조직 및 단체가 홍콩에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것을 금지하고 홍콩의 정치 조직이나 단체가 해외의 정치 조직 및 단체와 관계를 맺는 것을 금지해야 한다’는 조항이 엄연히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와 홍콩행정청의 고민은 이 제23조 위반에 대한 처벌 세부 규정이 없다는 것. 해서 이를 법제화한 조치가 바로 홍콩 국가 보안법인 것이다. 이 법안 제정과 통과로 인해 이제 홍콩 시민들은 시위에만 참여해도 처벌받거나 심지어 약 30년의 징역형도 감수해야 한다.

▶일국양제 원칙을 무너뜨릴 수 없는 중국

지금, 코로나19의 위세가 꺾이지 않았지만 홍콩인들은 이 법안에 저항하고 있다. 그들은 ‘하늘이 중국 공산당을 멸하리라’는 구호까지 외친다. 중국 정부로서는 감당해 낼 수 없는 경계선까지 온 것이다. 현재 홍콩의 자치권과 민주화 투쟁을 이끄는 지도부는 거의 ‘람차오攬炒’ 투쟁 전술까지 불사하고 있다. 이는 ‘홍콩을 무너뜨려 베이징도 무너뜨린다’는 일종의 옥쇄 전술이다. 홍콩 경제, 특히 금융 부분을 마비시켜 홍콩을 통로로 경제적 성장을 이룩한 중국 경제에 타격을 입히겠다는 뜻이다.

그 징조는 벌써 나타나고 있다. ‘헥시트Hexit’가 시작된 것이다. 헥시트는 ‘홍콩HongKong’과 ‘엑시트Exit’의 합성어로 해외 투자 자금의 홍콩 대이탈을 의미한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2019년 6월부터 시작된 범죄인 송환법에 반대하는 홍콩 민주화 시위 이후 약 400억 달러(한화 50조 원)의 엄청난 자금이 홍콩을 빠져나갔다. 이는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미국이 1992년부터 홍콩에게 부여한 ‘비자, 금융, 관세 등에 관한 특별한 지위’를 철회할 경우 홍콩의 자본과 국제 비즈니스에서의 허브 기능은 급격히 상실될 것이다. 홍콩은 뉴욕, 도쿄, 런던에 이은 세계 4대 자본 시장이다. 홍콩 증시에 상장된 기업은 약 2500개, 이들의 시가 총액은 약 3조5000억 달러(한화 4350조 원) 규모다. 이 지위가 벌써부터 흔들리고 있다. 2019년 9월, 아시아 증시 순위는 홍콩, 싱가포르, 상하이, 도쿄 순이었지만, 2020년 3월에는 도쿄, 상하이, 싱가포르, 홍콩으로 벌써 바뀌었다. 또한 국제적인 신용 평가 기관인 무디스는 지난 1월 홍콩의 국제 신용 등급을 Aa2→Aa3로 한 단계 강등했다. 특히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는 미국의 특별 지위 부여로 인해 달러당 7.75~7.85홍콩 달러로 환율을 고정하는 ‘페그peg제’가 무너질 염려다.

이 헥시트는 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금 홍콩에서 가장 호황을 누리는 사업은 아이러니하게도 ‘이민 사업’이다. 바로 홍콩인들의 ‘엑소더스’ 때문이다. 홍콩인들 중에는 이미 30여만 명이 영국의 해외 시민 여권을 보유하고 있다. 영국은 이 여권 소지자를 1997년 7월 이전 홍콩에서 태어난 약 290만 명으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발표했다. 외신들은 현재 홍콩인들의 반중 정서가 강해지면서 ‘우리는 중국인이 아니라 영국인’이라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한다. 홍콩 시민들은 홍콩 주재 영국 영사관에 찾아가 홍콩인들의 영국 영주를 허용해 줄 것을 요구하고 영국 의회에 청원을 시작했다. 그 근거는 홍콩 시민들이 가진 여권, 바로 ‘BNO(British Nationals Overseas)’다. 이는 ‘해외 거주 영국인’을 의미한다. 물론 이 여권 소지자의 영국 내 취업은 보장되지 않고 시민권과도 동등하지 않다. 그러나 현재 홍콩 시민들은 ‘이 여권 소지자는 영국 국민과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으며 영국 정부는 그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영국 정부에 주장하고 있다. 영국은 본래 홍콩의 중국 반환 전인 1997년 이전 출생자에게 BNO 여권을 발급했다. 지금까지 약 350만 명이 이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지만 10년마다 여권을 갱신해야 한다는 규정과 비용으로 인해 현재 약 30만 명의 홍콩 시민이 이 여권의 효력을 발동할 수 있다.

1997년 이후 홍콩 시민들은 두 개의 여권을 보유했다. 하나는 BNO이고 또 하나는 SAR(Special Administrative Region), 즉 중국 정부가 발급하는 홍콩특별행정구 여권이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 여권을 자랑스럽게 사용했다. 그러다 홍콩 내의 자치권 확산, 민주화 요구가 확대되면서 BNO 여권 갱신자가 대폭 증가했다. 홍콩 시민들은 중국이 홍콩을 귀속했던 1997년의 약속을 지키라고 요구한다. 즉, 자치와 민주주의다. 그러면서도 과거 ‘영국 식민지 시대’의 산물인 BNO 소유자가 증가하고 ‘우리는 중국인이 아닌 영국인’이라는 목소리가 증가하는 역설이 지금의 홍콩 현실이다. 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은 “홍콩 시민들의 대만 이주를 돕기 위한 전담팀을 구성했다”고 발표했다. 한화로 약 2억5000만 원 이상을 대만에 투자하고 대만인을 고용하면 대만 영주권을 주는데, 이미 많은 수의 홍콩인들이 대만 이주를 시작했다. 홍콩인들이 선호하는 이민지는 대만, 싱가포르,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로 중화권과 영어권이다. 요즘은 이 지역 외에 투자 이민이 용이한 아일랜드와 포르투갈도 각광받고 있다. 그 여파일까, 전 세계에서 악명 높은 홍콩의 비싼 부동산 매물이 쏟아지고 있고 미국 또한 미국영사관 직원 관사를 약 1조3000억 원에 매물로 내놓았다.

이에 대해 중국 정부의 태도는 여전히 강경하고 조금도 물러설 기미가 없다. 베이징 입장에서도 ‘아시아의 진주’이자 ‘중국의 돈 창구’인 홍콩의 금융과 경제가 무너지는 것을 결코 원치는 않겠지만 중국은 이보다 더 고수해야 할 원칙이 있다. 중국 정부는 말한다. ‘홍콩은 중국의 해군 항구 역할만 해도 된다’고. 물론 경제적 통계 수치에서 그동안 홍콩이 중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1997년 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당시 홍콩이 중국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약 25%였지만 지금은 3%로 그 규모가 축소되었다. 하지만 이는 수치일 뿐이다. 홍콩을 통한 중국의 수출입 규모와 관세 혜택, 각종 정보 유입, 인적 네트워크 활용, 아시아 금융허브로서의 가치 등을 감안하면 여전히 홍콩은 중국에게 ‘빛나는 진주’이자,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그럼에도 중국이 국제적 비난을 감수하면서도 홍콩의 자치권에 선을 그은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중국의 전략적 원칙 때문이다.

이는 중국이 공산화된 이후 지금까지 고수하는 ‘전략적 적국과의 직접적인 국경 대치 금지’ 원칙이다. 중국의 여러 자치구 중에서 중국이 가장 예민하게 관리하는 곳이 있다. 신장위구르자치구, 티베트자치구, 그리고 홍콩이다. 특히 지난 2월 중국은 국무원 산하 홍콩마카오 사무판공실 주임으로 샤오바오룽를 임명했다. 그는 저장성 서기를 지낸 시진핑 주석의 최측근이다. 또한 중앙 홍콩마카오 공작영도소조의 조장으로 한정 부총리가 임명되었는데 그는 직급은 부총리지만 중국 최고 지도부인 정치국 상무위원이다. 이 정도로 홍콩 문제는 중국 지도부의 최우선 관심 사항이다.

중국은 신장, 티베트, 홍콩, 마카오 그리고 대만 등도 모두 중국이라는 이름의 ‘일국一國’이라고 주장하고 이를 원칙으로 삼고 있다. 물론 ‘일국양제一國兩制’는 인정한다. 즉, ‘하나의 국가 아래 자치권이 보장된 자치구’인 것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많은 국가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몽고,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이다. 이들 국가도 중국으로서는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들 국가 뒤에 있는 러시아에 중국의 초점은 맞춰져 있다. 즉, 신장위구르자치구가 있음으로써 러시아와 직접적으로 국경을 접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티베트 역시 마찬가지다. 티베트는 부탄, 네팔과 국경을 접하고 있지만 중국이 이들 국가를 두려워하는 것은 아니다. 바로 부탄과 네팔 뒤에 있는 인도와의 직접적인 국경 대결을 피하고 싶은 것이다. 홍콩 역시 마찬가지다. 홍콩의 특수성을 인정해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지만 홍콩이 중국의 일원이 아닌 ‘독립된 국가’로서 전 세계에 인정받고 그 역할을 수행하는 것, 즉 베이징의 통치에서 벗어나는 것을 중국은 인정할 수 없다. 대만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으로서는 중국 내 모든 영토와 자치구도 소중하지만, 신장, 티베트, 홍콩, 대만은 ‘하나의 중국’이라는 전략적 원칙 아래 그 어떤 희생과도 바꿀 수 없는, 변할 수 없는 원칙인 것이다.

▶홍콩은 본래 부유하는 외로운 도시

홍콩은 이제 선택의 기로에 섰다. 아시아의 허브와 진주로서 살아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 기능을 상실하고 평범한 중국의 일개 도시로 존재할 것인가? 긴 시간이 지나야 그 결과가 드러나겠지만 홍콩의 ‘아름다운 생존’에는 이제 많은 시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때 우리는 ‘홍콩 간다’는 말을 썼다. 기분이 좋거나, 기대감을 채울 때다. 그만큼 홍콩은 무엇이든 넘쳐나는 곳이었다. 자유, 인종, 예술, 돈, 음식 그리고 영화까지. 그곳에 가면 누구나 자연스럽게 세계인이 되었다. 하지만 홍콩의 본질은 사실 외로움에 있다. 정착해 사는 사람보다 머무는, 잠시 들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이방인의 도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부유하는 거대한 섬, 아시아에 있는 유럽, 유통 기한 있는 도시, 그 99년의 외로움을 끝내고 이제 정착했지만 여전히 외롭다. 마지막 화려한 공연을 끝내고 분장실에 들어와 화장을 지우는 ‘아름다운 스타’처럼.

홍콩은 중국 대륙 남쪽 주장강 유역에 위치해 있다. 작은 어촌 마을이던 이곳은 19세기 들어 서구 열강의 아시아, 특히 중국 진출의 교두보가 되면서 급속도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역사는 독특하다. 중국의 것이지만 유럽에 속해 있었고, 중국인이 대부분이지만 세계 사람들이 모여 같이 사는 곳이었다. 하지만 이런 활발한 교류 뒤에는 짙은 외로움이 있었다. 그들도, 지켜보는 우리도 그 외로움의 정체를 그저 좁은 곳에서 많은 이방인이 잠시 머무르는 ‘여행객의 외로움’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홍콩의 본질적인 고민이자 외로움의 본질은 99년 동안의 익숙함과의 이별이었다. 그들은 유한했다. 1997년 7월1일, 하루아침에 홍콩의 모든 것은 바뀌었다.

어떤 이들은 그저 옷만 바꿔 입을 뿐이라고 애써 가볍게 생각했고, 또 다른 이들은 새로운 것을 맞이하는 설렘을 넘어 두려움을 느꼈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했다. 홍콩인은 물론 세계인 모두가 홍콩의 오랜 연인과의 이별, 새로운 연인과의 시작을 지켜보았고 벌써 20년이 흘렀다. 아무것도 달라진 것이 없다는 느낌과 아직도 옛 연인이 그립고 새 연인이 어색하다는 감정이 교차하고 있다. 원래 홍콩은 그런 곳이다. 다양한 인종, 문화가 뒤섞여 ‘홍콩스럽게’ 자리 잡는 것이다. 홍콩에 잠시 들르는 외지인은 아무런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아름다운 야경이 돋보이는 빅토리아항, 홍콩의 본질이 묻어 있는 구룡반도와 침사추이, 새로운 홍콩을 만끽할 수 있는 홍콩섬의 핫 플레이스들은 여전하다.

인구 약 700만 명의 홍콩. 구룡반도와 홍콩섬, 신계로 이루어진 이 지역을 우리는 홍콩이라 부른다. 그 이름에는 자유, 창의, 융합, 소통, 교류의 유전자가 들어 있다. 그 유전자는 먹거리, 볼거리를 넘쳐나게 했다. 밀크티, 딤섬, 브런치, 광둥식 요리는 물론이고 미슐랭 스타에 빛나는 스타 셰프들이 넘쳐났고 특히나 ‘홍콩 영화’라는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주윤발, 유덕화, 장국영, 양조위, 임청하, 장만옥, 성룡, 이연걸 등 기라성 같은 스타들은 그야말로 홍콩과 아시아를 빛냈다.

지금 홍콩은 어떤 모습일까. 사실 여행자에게는 중요치 않은 질문이다. 하지만 홍콩은 동시대를 살아온 오래된 친구를 만나는 묘한 감성을 불러일으킨다. 분명 만나면 반갑고 밤새 할 이야기도 많지만 떠나야 할 티켓을 손에 쥐고 시계를 보게 되는 그런 상대. 정착하고 살아야 하는 공간이 아닌, 이방인으로 잠시 머무는 곳인 셈이다. 그래서 홍콩은 원래부터 외로운 도시다.

▶2046년까지 보장된 홍콩의 자치권

19세기,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청나라는 외세 침입에 무방비였다. 1842년 영국과의 아편 전쟁에 패배하며 홍콩 지역을 영국에 내주었다. 그 후 1856년 제2차 아편 전쟁에서 또 패배한 청나라는 영국과 베이징 조약을 체결하며 지금의 홍콩섬 맞은편 구룡반도를 영국에 내주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홍콩섬까지 영국에 넘어가게 된 사건은 1894년 청일 전쟁에서의 청나라의 패배다. 진짜 종이호랑이임이 확인된 청나라를 열강들은 달려들어 뜯어먹었다. 러시아는 여순과 다롄을, 프랑스는 광저우를, 일본은 만주를 손에 넣자, 영국은 1898년 6월9일 청나라와 ‘홍콩경계확정특별조항’을 체결해 신계 지역까지 손에 넣었다. 그리고 ‘구룡반도, 홍콩섬, 신계 지역을 99년 동안, 즉 1898년부터 1997년까지 영국이 조차한다’는 협정을 체결했다. 영국의 완벽한 홍콩 세 지역 확보였다.

20세기 들어 제2차 세계 대전 시 일본이 홍콩을 점령했지만 이후 중국 공산당의 본토 장악 후에도 영국의 홍콩 지배는 계속되었다. 홍콩 주민과 공산화 후 본토에서 내려온 중국인 등이 한데 어울려 살던 홍콩은 영국식 제도를 흡수하며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 아시아의 금융 허브가 되었고 아시아에서 홍콩은 ‘가장 선진화된 도시’로 그 위용을 자랑했다. 홍콩의 전성시대가 열린 것이다. 홍콩에 모든 것이 들어왔다. 사람, 돈, 제도 등등. 홍콩은 풍성해졌다. 돈과 사람은 넘쳐났고 사람은 중국인이지만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와 예술은 영국식 유럽 문화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들에게 다가올 1997년은 아주 먼 미래였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1972년 중국과 영국은 수교를 맺고 홍콩의 조차(한 나라가 다른 나라 영토의 일부를 빌려 일정한 기간 동안 통치하는 일), 반환 문제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영국은 조차의 연장, 혹은 구룡반도, 홍콩섬, 신계 중 일부에서 영국의 지배 권한을 인정받길 원했지만 중국은 모든 것의 반환을 요구했다. 1997년이 다가올수록 홍콩인들의 불안은 점점 가시화되었다. 1997년 이후 그들이 누리는 문화와 예술, 경제적 풍요는 계속될 것인가, 또 지금과 같은 자유를 지킬 수 있는가, 과연 중국은 어떠한 정책을 시행할 것인가 등등. 홍콩의 고민은 계속되었다.

일부 홍콩인들은 엑소더스를 감행했다. 부유하는 거대한 섬 홍콩을 떠나 뿌리를 내리고 정착할 수 있는 영국, 호주, 미국, 캐나다,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로 떠났다. 하지만 대다수 홍콩인들은 그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아무것도 예측하고 대비할 것 없이 1997년을 받아들였다. 1990년대 들어 홍콩은 그야말로 ‘정착지 없이 대양을 떠도는 거대한 섬’이 되었다. 유럽의 작은 섬이 아시아의 한곳에 잠시 머무는 듯한, 뿌리 없는 자의 불안이 홍콩을 엄습했다. 그것은 마침 20세기 종료와 함께 불어닥친 세기말적 기운과 결합해 홍콩을 지배했다. 1997년 7월1일, 홍콩에서 영국 국기가 내려가고 중국의 오성홍기가 올라갔다. 99년이라는 긴 외출을 끝내고 홍콩은 중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은 영국과 홍콩에 약속했다. 1997년 이후 50년 동안, 즉 2046년까지 일국양제 체제를 유지하고 홍콩이 그동안 누린 모든 것을 그대로 존속시키는 자치권을 보장한 것. 하지만 그것 역시 유통 기한이 있다.

▶‘아시아의 진주’ 지위를 유지할 것인가?

1997년 약 150년 동안 영국이던 홍콩의 중국 반환은 세기말의 일대 사건이었다. 홍콩인들은 이미 한 세기 넘게 영국화 과정 속에 ‘영국적 민주주의’를 실험했고 향유했다. 즉, 홍콩이라는 거대한 기계를 운용하는 작은 부속품마다 민주주의의 가치가 침투해 한몸이 된 것이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홍콩은 공식적으로 중국의 일부가 되었다. ‘중화인민공화국 홍콩특별행정구’가 홍콩의 이름이다. 100여 년을 영국인으로 살던 홍콩인들은 이제 23년을 중국인으로 살았다. 당연히 쉬운 결합은 아니었다.

지금 홍콩은 뜨겁다. 동양의 진주, 중국의 보석, 아시아의 금융 허브로 불리며 군림했던 홍콩은 근 1년간 지속된 홍콩 시민들의 시위로 거의 마비 상태에 빠졌다. 시위의 촉발은 ‘범죄인 송환법’이다. 중국 정부가 요청하면 홍콩 정부는 ‘범죄인’을 중국 정부에 인도해야 한다. 홍콩 시민들은 이를 중국 정부에 저항하는 인사에 대한 탄압 수단으로 쓰일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홍콩 정부의 강경 진압에도 불구하고 날이 갈수록 시위 군중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시위대의 요구는 점차 ‘홍콩의 완벽한 자치권’으로 확대되었다.

중국 정부는 무력 진압을 경고했지만 홍콩 시민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5개 조건을 홍콩과 중국 정부에 요구했다. 송환법 공식 철회, 강경 진압 경찰 독립적인 조사,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석방과 불기소, 그리고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다. 홍콩 시민들은 이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시위를 계속하겠다고 선언했다.

홍콩과 중국 정부의 고민은 깊어졌다. 홍콩에 대한 무력 진압은 지금까지 한 세기 동안 누렸던 홍콩의 지위와 이득을 포기하는 것이며 국제 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무시할 수도 없다. 중국 정부의 고민은 더 있다. 홍콩 시민들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중국 내 자치구, 즉 신장, 티베트 등의 자치권과 민주화 요구로 확대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만과의 통일 역시 험난한 길이 뻔해진다. 이제 홍콩 사태는 단순한 중국의 국내 문제를 넘어 국제적인 현안이자 중국의 ‘위대한 중국몽 완성’을 위해 꼭 풀어야 할 숙제가 되었다.

지난해 9월4일 홍콩의 행정장관 캐리람은 ‘범죄인 인도법’, 즉 송환법을 철회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약 3개월 동안 치열하게 홍콩을 뒤흔든 원인 중 하나를 제거한 것이다. 그럼에도 홍콩 시민들의 시위와 요구는 계속되고 있다. 그들은 근본적으로 홍콩이 영국에서 중국으로 반환되던 당시의 ‘일국양제’, 즉 중국에 속해 있지만 홍콩만의 자치와 자유 그리고 민주를 요구한다. 하지만 베이징은 지난 5월28일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범죄인 송환법 반대 시위대가 영국과 미국 국기를 흔들고 중국의 오성홍기를 짓밟은 데 충격을 받았고, 그 결과가 ‘홍콩 국가보안법’으로 나타난 것이다.

이제 홍콩은 시험에 들었다. 돈과 사람 그리고 홍콩의 가치가 ‘엑소더스’를 통해 상실될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홍콩이 아시아의 진주로 빛날 것인지, 모두가 관심을 갖고 지켜보는 상황이지만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럼에도 딱 하나, 홍콩이라는 ‘아시아의 보석’이 여전히 그 자리에서 반짝거리기를 바라는 마음은 모두가 같지 않을까.

[글 정우영(프리랜서) 사진 픽사베이, 포토파크]

우리 정부에 ‘의제 채택’ 알려 / 2015년 日 근대산업시설 23곳 / 강제동원 표기 조건으로 등재 / 오히려 강제성 부인 자료 전시 / 정부, 4월 약속 불이행에 항의 / 외교부선 등재 취소검토 요청 / 국회도 약속이행 결의안 발의

유네스코가 일본의 산업유산정보센터 역사 왜곡과 관련해 “한국 측의 우려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며 이를 세계유산위원회의 자문기구에 전달했다”고 지난달 우리 정부에 알린 사실이 24일 확인됐다. 정부는 지난 4월 ‘일본 측이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문제에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촉구 서한을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보냈다.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메칠드 뢰슬러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장은 차기 유네스코 유산위원회 회의에서 이 문제를 다루겠다는 뜻을 전했다. 뢰슬러 센터장은 “후속조치로서 모든 정보에 대해 공정한 평가를 수행하고 있다”며 “저희(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는 이러한 분석 내용과 그 결과를 제44차 세계유산위원회 의제문서에 반영할 예정”이라고 우리 정부에 전했다.

일본 정부는 2015년 7월 하시마(군함도)탄광 등 강제노역 시설 7곳이 포함된 일본 근대산업시설 23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됐을 때 유네스코 총회에서 노동자 강제동원 사실을 병기하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최근 일본 도쿄에 문을 연 근대산업시설을 소개하는 산업유산정보센터 전시관에는 거꾸로 강제동원 피해를 부인하는 내용의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분석 결과를 다음 세계유산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다루겠다고 밝힌 만큼 일본의 근대산업시설 23곳의 세계유산 지정 취소가 성사될지 관심을 끈다. 역대 등재 취소 사례는 두 번뿐인데 유산 자체가 훼손되거나 제대로 보존되지 않은 경우였다. 외교부는 “지난 22일 유네스코 사무총장 앞 서한을 통해 등재 취소 가능성 검토를 포함해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에 충실한 후속조치 이행을 촉구하는 결정문이 채택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협조와 지지를 요청했다”며 강경 대응기조로 나섰다.

외교부는 이날 한·일 국장급협의 화상회의에서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근대산업시설과 관련 산업유산센터의 전시 내용에 2015년 당시 세계유산위원회의 결정과 일본 정부대표가 약속한 후속조치가 이행되지 않은 점에 강한 유감과 항의의 뜻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국회에서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나서서 이 문제에 대한 결의안을 발의했는데 6월 국회 중 채택되면 일본이 느끼는 압박감이 더 커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문제를 단순히 한·일 간의 문제로 다루지 말고 국제사회 차원의 대응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현재 한국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비위원국이어서 의결권이 없는 데다 관련국들의 공동대응이 대일 압박에 더 효과적이기 때문이다.

일본 산업유산정보센터 내 강제동원과 관련한 일본 측 주장을 주로 보여주는 존(Zone)3의 전시물. 산업유산정보센터 제공

동북아역사재단 한일문제연구소 남상구 소장은 통화에서 “일본은 세계유산제도를 자기들의 역사를 미화하는 데 활용하고 있다”며 “이는 유네스코 존재 의미에 대한 도전이다. 중국, 미국, 호주, 네덜란드 등 2차대전 당시 피해국들과 공동 대응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법 전문가인 신희석 연세대 법학연구원 박사는 “징용공 강제동원 문제는 당시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위반이었던 만큼 그쪽을 통해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도 있다”며 “정부와 국회가 일본 국민을 상대로 여론을 설득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손정의 알리바바 이사 퇴임…마윈도 소프트뱅크 이사 퇴임

손정의(孫正義·일본 이름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그룹 회장[도쿄 교도=연합뉴스 자료사진]

(도쿄=연합뉴스) 김호준 특파원 =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25일 재무 개선을 위해 진행하는 4조5천억엔 규모 자산 매각의 80%는 전망이 섰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이날 오전 도쿄도(東京都) 미나토(港)구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에게 이같이 말했다고 NHK는 보도했다.

그는 2019회계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에 소프트뱅크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한 것에 대해 “소프트뱅크는 괜찮냐는 걱정의 목소리도 많이 듣는다”며 “사상 최대 적자이니 당연한 걱정이나, 오늘 시점에서 우리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전보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4조5천억엔 규모 자산 매각에 대해서는 미국 이동통신사 T모바일의 주식 매각 등 80%는 전망이 섰다고 설명했다.

‘투자처의 결정이나 관리를 손 회장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한 주주의 지적에 손 회장은 “능력에는 자신이 있지만, 그것이 한계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직원의 힘을 결집해가겠다”고 말했다.

손 회장은 ’60대 동안은 사장을 계속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 “방침에 변함이 없고 앞으로 7~8년은 더 사장하고 싶은데 ‘대략 60대’라고 했지만, 조금 넘을 수도 있다”며 70대가 되어도 사장을 계속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날 소프트뱅크 주총에서 회사 측 참석자들은 코로나19 감염 예방을 위해 모두 온라인으로 참여했다.

손 회장은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 이사직에서 퇴임했다고 밝혔다.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주인 마윈도 이날 소프트뱅크 그룹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이는 손 회장이 소프트뱅크의 재무 개선을 위해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한 것에 따른 영향으로 풀이된다.

손정의 “자산 매각 80% 전망 섰다”
지분 처분한 알리바바 이사 퇴임 공식화…마윈도 소프트뱅크 이사 퇴임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왼쪽)과 알리바바 창업자 겸 전 회장인 마윈이 지난해 12월6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도쿄포럼 2019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손정의(孫正義·손 마사요시) 일본 소프트뱅크 그룹 회장이 대규모 자산매각 계획과 함께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의 이사직 퇴임을 공식화 했다. 

NHK방송 등 일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손 회장은 25일 도쿄도(東京都) 미나토(港)구 소프트뱅크 본사에서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재무구조 개선을 언급하며 “4조5000억 엔(약 49조5000억원) 규모의 자산 매각 계획의 80%는 전망이 섰다”고 밝혔다.

손 회장은 미국 이동통신사 T모바일의 주식 매각 등을 중심으로 대규모 자산을 처분해 나갈 방침이다. T모바일은 소프트뱅크그룹의 이동통신 자회사였던 옛 스프린트와 올 4월 합병한 회사로, 소프트뱅크는 T모바일의 지분 24%(약 3억 주)를 보유하고 있다. 

앞서 소프트뱅크그룹은 10조엔(약 110조원) 규모 투자펀드인 ‘비전펀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 등으로 거액의 투자 손실을 기록하면서 그룹 전체가 위기에 내몰리자 자산 매각 등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다. 

2018사업연도에 1조4111억 엔의 순이익을 올렸던 소프트뱅크그룹은 2019사업연도(2019년 4월~2020년 3월)에는 투자손실로 9615억 엔의 순적자를 기록, 1981년 창사 이후 최악의 경영실적을 기록했다.

손 회장은 이날 주주총회에서 중국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 그룹 이사직에서 퇴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알리바바 그룹의 창업주인 마윈도 이날 소프트뱅크 그룹 이사직에서 물러났다. 

손 회장은 “자신의 요청에 따라 사퇴하기로 했으며, 마 전 회장과 사임 날짜를 맞췄다”고 밝혔다. 그는 “모든 과정이 순조롭게 진행됐으며 알리바바와 좋지 않은 감정은 없다”고 설명했다. 앞서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의 재무 개선을 위해 알리바바 지분을 매각했다. 

이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과 일본 출신 두 거물 기업가가 상대방 회사 이사회 소속으로 일하며 다져온 15년 동안의 협력관계가 끝났다고 평가했다. 손 회장은 2005년 알리바바 이사회에 들어갔고, 마 전 회장은 2년 후인 2007년 소프트뱅크 이사회에 합류했다. 

한편 손 회장은 소프트뱅크가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기록하며 우려를 낳고 있다는 점에 대해 “사상 최대 적자이니 당연한 걱정이나, 오늘 시점에서 우리가 보유한 주식의 가치는 코로나19 전보다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처의 결정이나 관리를 손 회장 개인의 능력에 의존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아니냐’는 한 주주의 지적에 손 회장은 “능력에는 자신이 있지만, 그것이 한계가 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직원의 힘을 결집해가겠다”고 답했다.

손 회장은 ’60대 동안은 사장을 계속한다는 방침에 변함이 없느냐’는 질문에는 “방침에 변함이 없으며 앞으로 7~8년은 사장을 더 하고 싶은데 ‘대략 60대’라고 했지만, 조금 넘을 수도 있다”며 70대에 접어든 이후에도 사장을 연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中제재 화력 올리는 트럼프…화웨이 ‘중국군 소유기업’ 지정
하이크비전·차이나모바일 등, 중국 인민해방군 소유·후원기업 명단에…추가 제재 가능성

지난해 6월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중국의 대형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영상보안업체 하이크비전 등을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4일(현지 시각) 보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전방위 중국 압박이 또 한 단계 강도를 높임에 따라, 미·중 갈등이 더욱 고조될 가능성이 커졌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화웨이와 하이크비전을 포함해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중국항공공업그룹(AVIC) 등 20개사를 인민해방군 후원 기업 명단에 올렸다.

해당 문건은 미 국방부가 작성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방부는 1999년 제정된 법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 또는 지배하는 기업 명단을 만들어야 한다.

국방부의 한 관리는 로이터에 해당 기업들을 중국군 소유기업으로 지정한 것이 맞으며, 이를 미 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국방부는 공화·민주 의원들로부터 ‘중국의 기술 스파이를 막아야 한다’는 이유로 중국군 소유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라는 초당적 압박을 받아왔다.

지난해 9월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와 톰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 마이크 갤러거 공화당 하원의원 등은 마크 에스퍼 국방부 장관 앞으로 보낸 서한에서 중국 당국이 군사적 목적으로 신진 민간 기술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가능한 한 빨리 중국군 소유 기업의 명단을 공개하는 데 전념해달라”고 요청했다.

코튼 공화당 상원의원과 갤러거 하원의원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에게 중국군 소유로 분류된 기업들에 경제제재를 부과하라고 촉구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국방부의 이번 지정은 제재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 법률을 근거로 대통령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미국에서 영업하는 해당 기업들을 처벌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로이터는 미 행정부의 이같은 조치가 해당 중국 기업들에 대한 추가 금융제재의 토대를 놓은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국 베이징 한 빌딩 너머로 비치는 화웨이 소매점 간판 ⓒ 연합뉴스

미 정부는 지난해 5월 화웨이를 거래제한 기업 명단에 올려 미국에서 부품 구매 등을 할 때 반드시 미 당국 허가를 받도록 규제했다. 올해 5월에도 반도체 구매와 관련한 추가 제재를 부과했다.

백악관은 이날 명단에 있는 기업들을 상대로 한 제재 실행 여부에는 명확히 답변하지 않았다. 백악관은 그러나 “명단은 미국 정부와 기업, 투자자, 학술기관이 이들 기업과 협력할 때 상당한 주의를 준다는 점에서 유용하다”면서 “특히 명단이 확대될수록 그렇다”고 밝혔다.

미국의 이번 지정과 명단 공개로 양국의 긴장은 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응과 홍콩 보안법 강행 등으로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지난주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이슬람 소수민족 인권탄압에 책임이 있는 중국 당국자를 제재할 수 있도록 한 위구르 인권정책법에 서명하자 보복하겠다고 위협하기도 했다.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은 성명에서 “명단은 시작에 불과하다”며 “중국 국영기업과 중국 정부의 지시를 받는 기업들이 얼마나 미국 경제와 안보에 위협을 가하는지 경고하는 데는 불충분하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24일 중국 상하이 화웨이 플래그십 스토어 앞에 사람들이 줄지어 서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중국의 대형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와 영상보안업체 하이크비전 등 20개 중국 기업들을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기업으로 지정했다고 로이터통신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를 근거로 해당 기업들에 대한 제재가 나올 수 있어, 미·중간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로이터통신은 24일(현지시간) 화웨이, 하이크비전,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중국항공공업그룹(AVIC) 등 20개 중국 기업들이 인민해방군이 후원하는 기업으로 지정된 국방부 문건을 단독 입수해 보도했다. 국방부는 1999년 제정된 법에 따라 중국 인민해방군이 소유 또는 지배하는 기업의 명단을 만들어야 한다. 국방부의 한 관리는 로이터통신에 해당 문건은 진본이며, 의회에 제출됐다고 밝혔다. 그동안 공화·민주 상원의원들은 중국 당국이 군사 목적으로 민간 기술을 빼내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면서 국방부에 인민해방군이 소유한 기업들의 명단을 공개하라고 압박해왔다.

로이터는 국방부의 이번 지정이 곧장 제재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지만, 해당 중국 기업들에 대한 추가 금융제재의 토대를 놓은 것이라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해 해당 기업들의 자산을 동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화당의 톰 코튼 상원의원과 마이크 갤러거 하원의원은 이날 국방부의 명단 공개를 높이 평가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이들 기업에 경제제재를 부과하라고 촉구했다. 백악관은 관련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이날 성명을 내고 “전 세계 시민이 중국 공산당의 감시국가 위험성에 눈을 뜨면서 화웨이에 등을 돌리고 있다”면서 “각국이 신뢰할 만한 5G 장비공급업체들에 대해서만 거래를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 세계 통신회사와 화웨이의 거래가 사라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체코, 폴란드, 스웨덴, 에스토니아, 루마니아, 덴마크, 라트비아, 그리스를 예로 들었다.

앞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지난 23일 출간된 회고록 <그것이 일어났던 방>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백악관 만찬에서 화웨이 런정페이 회장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이 캐나다에서 체포된 사건을 두고 “중국의 이방카”가 체포돼 중국이 압력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 7월 17일 재개장 연기
– 플로리다주 일정은 아직 그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애너하임 디즈니랜드.AP뉴시스

[파이낸셜뉴스] 미국 캘리포니아주 디즈니랜드가 오는 7월 17일로 예정됐던 재개장 계획을 미뤘다.

미 CNBC등에 따르면 24일(현지시간) 디즈니는 성명을 통해 캘리포니아 애너하임에 위치한 디즈니랜드와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처 파크의 영업 재개 일정을 연기한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재개장 시기는 밝히지 않았다. 디즈니는 “직원 수천명이 업무에 복귀하고 사업을 재개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고려하면, 당국 승인을 받을 때까지 테마파크와 리조트 재개장을 연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4만명 가까이 발생하며 폭증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날 미국의 일일 확진자는 3만9103명을 기록,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금까지 일일 최다 확진자는 지난 4월 24일 기록한 3만9072명이었다.

미국의 누적 확진자는 246만3271명으로 전 세계 압도적 1위다.

코로나19 2차 파동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지난 10일 미국의 온라인 청원 사이트 체인지(Change.org)에는 디즈니랜드 재개장을 늦춰야 한다는 청원까지 올라왔다. 동의한 사람은 5만명을 넘겼다.

플로리다주 디즈니월드 직원들은 재개장 연기를 촉구하는 청원에 나섰다. 이들은 온라인 청원 사이트 ‘무브온’을 통해 “목숨을 걸고 일하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면서 “사람의 목숨이 이윤을 내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디즈니는 7월 11일로 예정된 플로리다 디즈니월드 재개장 일정은 아직 변경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와 마찬가지로 확진자가 최근 급증한 플로리다는 이날 5508명의 신규 감염자를 보고했다.파워볼엔트리

#미국 #디즈니랜드 #코로나19

문 닫은 디즈니랜드 입구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 / 사진=연합뉴스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우려되면서 내달 17일로 예정됐던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 재개장이 무기한 연기됐습니다.

디즈니는 현지시간 24일 성명을 통해 “수천 명에 이르는 직원들을 다시 불러들이기 위해서는 주(州) 정부가 최소 오는 4일 전까지 재개장을 승인해줘야 하지만 아직 통보를 받지 못했다”며 “놀이공원과 호텔 리조트를 재개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 AFP 통신이 보도했습니다.FX마진

디즈니는 재개장 날짜를 발표하지 않았습니다.

앞서 디즈니는 놀이공원 폐쇄 약 4개월 만인 7월 다시 문을 연다는 소식을 알렸다가 “직원과 손님의 목숨을 담보로 도박한다”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이날 미국에서는 일일 신규확진자 수가 3만6천명을 기록해 하루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캘리포니아에서는 지난 23일 기준 7천149명 신규 확진자가 발생해 누적 확진자 수 19만 명을 넘었습니다.

영화 뮬란 / 사진=연합뉴스
디즈니는 또 올여름을 겨냥한 블록버스터 영화 ‘뮬란’의 개봉 날짜를 또다시 연기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전했습니다.홀짝게임

뮬란은 원래 지난 3월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해 7월 24일로 한 차례 연기된 바 있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지속하자 영화관 개봉을 건너뛰고 곧바로 온라인에서 영화를 개봉하는 계획도 논의되고 있습니다.

다만 디즈니는 뮬란을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출시할 경우 영화관에서 상영할 때보다 수입이 수백만 달러까지 줄어들 수 있어 적절한 영화관 개봉 시점을 검토 중이라고 WSJ가 보도했습니다.

앞서 디즈니는 뮬란뿐만 아니라 영화 ‘블랙 위도우’, ‘정글 크루즈’ 등의 개봉도 올해 말과 내년으로 각각 연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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